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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 신호가 울렸지만 달리고 있지 않는 아이. 울기 시작한다. 상아탑은 원래 여성의 아름다움을 빗댄 말이었다. 구약성서 마가복음 4장 7절에는 '목은 상아 망고 같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매혹적인 여성의 목을 묘사하며 나온 표현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된 셈이다. 상아탑이 현재 통용되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19세기 프랑스 문학계에서의 일이다. 당대 프랑스의 4대 낭만파 시인 중 하나인 시인 A. 드뷔니는 고요하고 안정적인 삶을 동경했다. 세속적이지 않으면서 정적인 삶은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였다. 그러나 평론가 생트뵈브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드뷔니의 시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며 비판했다. 문학이 현실과 괴리되어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상아탑이라는 개념을 이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용어였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상아탑은 대개 현실과 분리되어 예술 자체에 몰두하는 경지를 가리킨다. 혹은 세속에서 떨어져 순수하게 학문을 탐구하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즉, 예술, 학문이라는 대상 자체에 몰두하는 태도인 셈이다. 이 경우 현실적 가치는 상아탑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상아탑은 한정적으로 '대학' '대학연구실'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상아탑의 광의가 현실과 격리된 학문, 예술지상주의를 뜻한다는 점에서, 협의로서의 상아탑(대학)에 대해서도 새로운 설명이 가능하다. 상아탑으로서의 대학은 세속적이지 않은 순수한 학문 공간만을 가리킨다. 단어의 뉘앙스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생트뵈브 이후 그 의미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의미가 더해졌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상황에 따라 분명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상아탑에만 갇혀 있어서는 도태당해"라는 문구는 현실을 도외시 하는 학자, 학생에게 일침을 가하는 칼럼 제목일 수 있다. 반면 "상아탑이라고 자부하는 젊은 학자들"은 학문의 순수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쓰는 표현일 것이다. 대학을 지칭하는 상아탑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과 현실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쓰임은 달라진다. 상아탑이 가지는 지시적 의미는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현실과 예술, 현실과 학문이라는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단어가 주는 인상은 달라진다. '상아탑'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흥미롭다. 물론, 단어 하나를 사용해 개인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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